[준비운동 1] ‘일상의 지리학-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묻다’ 를 읽고 space politics [공간분석]

일상의 지리학_운명적 만남

대학오고 나서부터 생긴 버릇이 있다. 이것저것 사고 남은 잔돈들을 작은 통에 모아놨다가 한 오륙천원 정도 모이면 얼른 들고 서점으로 가서 책한권과 바꿔오는 것이다. 처음엔 동전이 주머니 속에서 짤랑 거리는 게 귀찮아서 모으기 시작했고, 나중엔 이것을 어떻게 쓰면 더 좋을까 고민하다가 ‘별 것 아닌 것들’이 모여서 ‘별 것’이 되는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해서 별 것 아닌 동전들을 별 것이 될 수 있는 책과 바꾸게 되었다. 특히 동전 오륙천원과 바꾸기에 가장 적당한 책은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플라스틱 책장 안에서 ‘나 들고가 주세요.’ 애처롭게 돌아가고 있는 몸집 작은 ‘문고판’ 서적들이었다. 특히 그러한 책들 중에서 책세상에서 나온 문고들은 그 작은 몸집에 너무나 큰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이번 <일상의 지리학>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훨씬 전에 샀던 이 책을 다시펴며, 이것이 '운명적 만남'이 아닌가 혼자 키득거리며 생각했다.

현실과 동떨어져 '지리(지루)'한 지리학

 ‘지리학’하면 보통 생각나는 것들이 ‘피오르드’, ‘하안단구’ 같은 실제로는 보지도 못했던, 고등학교 때 수능을 위해 줄기차게 외우기만 했던 용어들이 생각 나는게 고작이다. 물론 모든 학문에 있어서는 이론적인 게 중요하지만, 어차피 학문이라는 것을 하는 주체가 인간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완전히 현실과는 동떨어져 가는 학문은 분명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리학처럼 그 대상이 실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몸소 만나게 되는 학문은 더 그렇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 <일상의 지리학>은 정확한 답을 던져준다.

 아마 학문이 일상과 동떨어지게 된 이유는 선과 악, 고상한 것과 아닌 것, 학문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등 모든 것들이 이분법으로 나누는 모더니즘적 사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문'이라는 것의 시작이 모두 그 때 쯤 부터였을 테니 무리한 생각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획일적이고 이원화 된 세상이 물러가고 다원적이고 복잡한 사회가 눈을 뜬 지금, 저런식의 학문 태도는 스스로를 고립 시켜 갈 뿐이다. 어떠한 학문이건 지금에 와서는 일상생활과의 접점을 분명히 찾아야 한다. 특히 ‘지리학’과 같은 학문은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리학이라는 것이 일상과의 접점을 잘 찾았다면 적어도 우리가 주변을 둘러싼 일상 공간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의 눈으로 보게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몇 번씩이나 접해왔던 지리학은 우리에게 실제 눈으로 보지도 못할 용어들만 잔뜩 흐릿한 기억으로 던질 뿐 절대 일상의 공간을 지리학적으로 바라 볼 안목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으로 일상의 공간에 숨어있는 '두꺼운 결'의 이야기들을 밝혀내기엔 역부족이다. 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지리학을 배우는 사람들을 모두 지리학자로 만들지 않는 이상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작지만 큰 변화_ 일상의 지리학

 다름의 지리학, 같음의 지리학, 배치의 지리학, 리좀의 지리학...필자는 약간은 생소한 용어를 들어 이제껏 일상을 거들떠보지 않았던 지리학을 뛰어넘어 색다른 모색을 하고자 한다. 다름의 지리학은 단순한 지역간 차이에서 벗어나 시선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며, 같음의 지리학은 획일적인 경관에서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배치의 지리학은 공간 배치의 미세한 의미 체계를 해석하려는 시도이고, 리좀의 지리학은 공간을 매개로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통해 기존 지리학의 위치를 새롭게 점하고 일상에 스며든 지리학을 시도 한다.

 지리학에서 일상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가진 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 요즘의 학문적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푸코의 지적처럼 일상적인 삶을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으로 구분하는 잘못된 관습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토대가 되는 일상 공간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왔지만’ 이제는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늘 보아오던 낯익은 공간은 낯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려면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전의 관점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현상을 바라보는 위치도 다시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은 낮설고 어색한 다른 시선을 요구한다. 앞에서만 바라보았다면 뒤에서도 봐야 하고, 똑바로만 보았다면 거꾸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를 전체로 보았다면 전체를 나누어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늘 보아오던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눈뜨게 되는 과정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중요하지만 잊어왔던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내가 살고 있는 그 고요하고 때론 따분한 공간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동적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그 점에서 다른 공간과 구분되는 그 공간만의 모습이 드러나게 해준다.

일상의 지리학을 위해 - 1. 다름의 지리학

 이를 위해선 일단 ‘다름의 지리학’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다름은 일반적인 지리학에서의 지역간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차이’를 말한다. 이를 통해 내 주변을 둘러싼 일상적 공간을 분석하기를 원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 작업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것은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삶들의 다름’을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일상의 공간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일상의 공간에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퇴적된 우리의 시간과 삶이 녹아들어 있다. 다만 일반적인 지리학에서 그 점을 간과해왔을 뿐이다. 이점에서 다름의 지리학은 일차원적인 시선을 탈피해 일상 공간의 두꺼운 층위를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일상의 지리학을 위해 - 2. 같음의 지리학
 
다음으로 ‘같음의 지리학’은 표피적으로 같은 경관을 보여주는 지금의 상황에서 오히려 그 ‘같음’이 인간의 삶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따라 어떠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프랜차이즈 매장들은 일상의 공간들을 다른 곳과 동일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이러한 동일성이 결국은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맥도날드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기업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는 지우개인 셈이다. 또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맞이할 수 있는 고속도로라는 표준화된 경관을 예로 들어 비록 그것이 어디서나 동일한 경관을 보여준다고 해도 절대 동일한 인식만으로 설명은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화장실처럼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절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공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늘리고 의미를 부여 하는 일이 곧 공간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길’ 이야기 한다. 

일상의 지리학을 위해 -  3. 배치의 지리학

 그리고 ‘배치의 지리학’은 눈으로 보기에 획일적으로 보이는 것이 감추고 있는 미세한 의미 체계를 해석하고자하는 노력이다. 필자는 일상적인 공간인 아파트와 백화점 그리고 종교 공간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우리가 평소 그냥 지나치던 일상 곤간 속에 그 배치에 따라 얼마나 많은 다름이 담길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한다. 특히 아파트에서 가족들이 거실에서 쉬는 동안에 여성들이 가사 노동을 하면서 느꼈을 소외감을 보상해주기 위해 주방을 중심으로 아파트 내부를 배치하면 여성들이 만족 할 것 이라는 필자의 조언을 보면서 공감하는 한편 필자가 얼마나 일상적이고 작은 것들에 큰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를 여성의 전유 공간으로서 여성 중심으로 꾸미는 것은 오히려 여성을 아파트라는 공간에 가두기 위한 전략은 아닐까. 자본이, 남성 권력이 울타리를 조금 더 근사하고 멋지게 만들어,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울타리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지적에 늘 지적만 해왔던 아파트란 공간이 지닌 사회적인 장애요소로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명확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상의 지리학을 위해 -  4. 리좀의 지리학

마지막으로 ‘리좀의 지리학’은 이제껏 말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지리학이라는 학 문의 울타리를 넘으려는 시도를 한다. 공간이라는 인식소가 사회 현실을 이해하는데 본질적인 요소임을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리학은 공간을 통해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리좀의 지리학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이라는 것을 토대로 지리학이 어떻게 사회 현상을 설명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특히 ‘광장’에 대해 공간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작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추모제와 관련해서 보여줬던 이명박 정부의 양태와 맞물려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공간이란 것은 그 공간을 누가 점유 하느냐에 따라 늘 의미가 달라진다. 누가 그 공간의 주체가 되었느냐는 애초에 누가 물리적으로 그 공간을 계획하고 만들어냈는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2002년 수많은 ‘붉은 악마’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던 ‘집단 응원’의 서울 시청 앞 광장은 2008년 촛불 정국을 맞아 수많은 ‘촛불 시민’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당연히 월드컵 때의 광장은 응원과 환희의 공간이었고 경찰 역시 융통성 있고 허용적 이었다. 하지만 촛불 때의 광장은 저항과 비판의 공간이었고 경찰은 그러한 공간을 압박하고 가로막았다. 작년 노무현 대통령 추모제와 관련해서는 그 공간을 차벽으로 둘러싸고 아예 진입조차 못하게 함으로써 더 큰 압박과 차단을 보여주었다. 무정형의 공간인 광장이 지닌 의미를 촛불 정국을 거쳐 모든 시민들이 함께하는 ‘민주주의 장’으로 한층 올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공권력은 광장의 주인인 시민들을 원천 봉쇄 한 체 어렵게 일궈 놓은 광장의 의미 또한 퇴색시킨 것이다.

일상의 지리학 = 이번 프로젝트의 길잡이

 오랜만에 읽은 시원하고 명쾌한 책이었다. 게다가 ‘지금 여기’를 강조하는 필자의 통찰력과 일상에 대한 관심에 탄복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필자의 주장처럼 지리학은 아니 모든 학문은 ‘지금 여기’를 다룰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것을 버리고, 민중을 버리고, 삶과 사회를 버리고 홀로 독야청청 학문의 순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특히 사회과학을 하는 나로서는 지양해야 할 태도이다. 이점에서 <일상의 지리학>이 던져주는 의미는 다만 지리학으로서의 쇄신이 아니라 모든 학문과 공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미를 되새겨 보는 장을 마련해주었으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백화점'이란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길잡이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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