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키워드로 본 ‘다우트’ movie [다우트]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위해서 전제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communication, 즉 소통일 것이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한 문제를 풀어줄 가장 쉽고도 중요한 수단이 바로 소통이기 때문이다.

 영화 <다우트>의 주된 내용은 ‘의심과 회의’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것은 등장인물들 간의 ‘소통의 문제’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소통’과 ‘소통 부재’의 시퀀스가 한 번씩 교차되어 나타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로 등장인물들 간에 소통이 되는 시퀀스는 플린 신부가 등장하고, 소통이 안 되는 시퀀스에는 알로이시스 수녀가 등장한다. 과연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플린 신부는 다른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해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하고 이해가 싹트게 된다. 그래서 플린 신부가 등장하는 씬은 주로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이다. ‘타자’인 흑인 학생 밀러가 그에게 마음을 연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알로이시스 수녀는 대화보다는 주로 명령을 하고 호통을 치며, 어떠한 상황에 대해 미리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만으로 단정을 짓는다. 이러는 사이 상대방의 이야기나 생각은 무시당하고, 결국 상호 간의 이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그녀의 사무실 앞에 커다랗게 쓰인‘QUIET’라는 문구처럼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가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적으로 눈이 멀어가는 늙은 수녀를 섬세하게 배려하는 것을 보면 그녀 역시 따듯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당신을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있냐는 제임스 수녀의 말에 그래야만 학교가 돌아간다는 대답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그녀의 ‘신경증’이 아니라 그녀가 선택한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플린 신부 역시 절대적인 선은 아니다. 그는 동료들과의 저녁식사에서 어느 뚱뚱한 모녀의 외모를 가지고 농담을 한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감독은 두 사람의 차이가 절대적인 선과 악의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의 차이는 두 사람이 선택한 소통 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의 차이는 극명하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슈람의 모델’이라는 것이 있다. 두 개의 원으로 구성된 아주 간단한 모델이지만 소통의 기본과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주는 모델이다. 모델에서는 A라는 원이 있고, B라는 원이 있다. 그리고 그 A와 B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소통이 되는 지점인 것이다. 그 교차하는 지점이 넓으면 넓을수록 소통이 더 잘 되는 것이고, 그 교차하는 지점이 좁으면 좁을수록 소통은 더 힘이 드는 것이다.
이 모델로 따져볼 때 플린 신부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해주면서 점차 둘 간의 공유점이 넓어지게 만드는 이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반면 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의 경험으로만 단정 짓는 가운데 점점 서로 간의 공유점을 잃게 만들어 결국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간다. 

 결국 이 영화가 파괴적으로 결말을 맺는 것 또한 소통의 부재로 인한 결과이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조금만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조금만 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플린 신부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회의에 차 쓸쓸히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글의 시작에서도 밝혔듯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이기 위한 기본은 ‘소통’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의 생각만을 내세우는 가운데 이 기본을 놓친 것이다. 심리학자 칼로저스‘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말을 했다. 오늘 영화 속 한 수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 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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